-사랑에 대한 생각-
한 남자가 잠을 자고 있었다. 자고 있는 그의 얼굴은 나름 미남형 이었다. 나이는 30대 중반에서 후반쯤 되어 보였다. 아내는 친정에 가 있었고 이틀뒤에 돌아올 예정이었다. 그는 5년전에 있었던 사고로 인해 오른쪽 종아리를 절단하는 수술을 받았다. 그래서 걷기 위해선 의족을 사용해야 했다. 목발을 사용 할 수도 있었지만 의족을 착용할 수 있는 건 다행이었다.
남자의 직업은 작가였다. 판타지 소설을 주로 써서 완결된 작품만도 3개나 되었다. 어느정도 괜찮은 수입이었지만 예전 판타지 소설 초기부흥시기 같은 대박은 아직 없었다. 그건 모든 작가들의 사정이기도 했다. 해리포터 같은 초대박도, 이영도의 드래곤 라자같은 대박도 이제는 기대하기 어려웠다. 요즘은 판타지 소설도 넘쳐나고 많은 사람들이 손쉽게 소설을 쓸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 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그는 수재 소리를 들을 수 있어서 작가로서는 어느정도 성공한 셈이었다. 수입은 대기업 직원의 연봉 수준보다 조금 많았다.
그는 곧 잠에서 깨어났다. 눈을 떠 시계를 보니 아침 8시였다. 그는 눈을 감고 다시 잠속에 빠져들었다. 8시 20분이 되자 스마트폰의 알람이 울렸다. 그는 다시 눈을 떳다. 그리고 곧 일어났다. 더 이상 자려는 생각은 없었다. 게으름을 부리지 않고 해야할 일들(세면이라 던지)을 해야한다. 그것은 그의 생활수칙중 하나였다. 프리랜서는 자기관리를 할 수 있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절단된 오른쪽 다리에 의족을 끼고 부엌으로 나와 일반 유리컵에 모닝커피를 탓다. 무지방우유가 들어가 있다는 봉지 커피였다.
그의 마음 상태는 괜찮았다. 그는 담배를 피우지도, 술을 사랑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는 어쩌면 이미 카페인 중독일지도 모른다고 스스로 생각했다. 가끔 커피를 마시는걸 지나친 몇 안되는 날들이었지만 그날들엔 집중도 잘 안되는것 같았고, 졸리기도 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커피가 담긴 컵을 들고 거실로 이동했다. 의족을 끼고 있기 때문에 어느정도 조심해야 하였다. 그는 거실의 쇼파에 앉아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다. 그의 눈빛은 순수해 보였고 세상을 비관적으로 살지 않을 그런 눈빛이었다. 그는 커피를 적당히 음미하면서 몇모금 마시다가 커피가 담긴 컵을 든채로 방으로 들어섰다.
방에는 기억자로 되어있는 책상이 있었고 그 책상은 왼쪽에서는 책을 읽거나 구상 작업을 할 수 있으면서 오른쪽에서는 컴퓨터를 할 수 있는, 두가지 일을 번갈아 할 수 있는 책상이었다. 의자도 돌아가는 의자여서 몸만 돌리면 되었다. 그는 컴퓨터를 키고 읽는 시간이 다 될 때까지 왼쪽에서 커피를 마저 마셨다. 그리고는 카카오톡PC 버전에 로그인 하고, 그 다음으로 인터넷에 접속을 하였다.
‘오랜 만이군..’
그의 다음(Daum) 이메일에 그간 없던 팬레터가 날아온 것이다.
‘작가님 안녕하세요! 작가님 팬입니다.. ^^’ 라는 제목의 이메일을 그는 클릭했다. 그의 이름은 여자같기도 한 이수현 이었다.
‘작가님 저는 작가지망생인 이수현 이라고 합니다. 저 여자는 아니구요. ^^ 작가님의 라미안트 스토리에서 레이스르가 자기 애인을 구하려다 죽게 되잖아요. 그 대목을 보며 떠오른 생각인데, 두 사람이 결혼을 했는데 둘중 하나가 사고로 불구가 된다던가 하면 그래도 지켜줄 수 있을까요? 지켜줄 수 없다면 그건 사랑도 아니지 않을까 하면서도 제 미래 와이프가 그렇게 된다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이 들어서 말입니다. 작가님은 진짜 사랑은 어떤 거라고 생각 하시는지 궁금 합니다.’
남자는 천천히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기 시작했다. 7살 연하의 아내와 결혼 약속을 하면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우린 서로에게 희생을 해야해. 너는 나보다 7살이나 적고 나는 너보다 7살이나 많아. 둘다 희생을 감수해야해. 다른 나이 비슷한 상대에게 마음이 끌리려 해도 그래서는 안돼. 결혼은 약속이고 서로에 대한 의리이기 때문이야. 물론 난 네가 좋고 너도 내가 좋지만 말이야. 우리 한 사람 대 한 사람으로 서로에게 약속을 지키자.’
아내는 그 말에 찬성했고 반년쯤 후에 둘은 결혼식을 올렸다. 행복하였고, 서로 잘 다투지도 않았다. 인생의 행복의 시작 이었다. 그런데 결혼하고 6개월이 지난 어느날 남자에게는 큰 사고가 생겼다. 음주 운전을 한 오토바이에 오른쪽 종아리를 치인 것이었다. 뼈는 산산조각이 났고 병원에서는 절단 수술을 제안했다. 자신의 처지에 할말이 없을 정도로 황당했고, 받아들이기 어려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현실을 자각하게 되었다.
그는 병상에 누워있으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나를 버리지 않고 아내가 계속 있어줄 것인가, 혹시 나를 버리고 떠나지는 않을까. 그런 생각부터 내가 그녀라면 어떨까. 이런 나를 수발들며 살아가기가 괴롭지 않을까...? 나는 그녀에게 매력이 있는 존재로 남을 수 있을까 까지.
오랫동안 생각하고 난 결론은 그녀에게 기회를 주자는 것이었다. 자신이 아내의 입장이라도 장애인인 나를 수발들기 싫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우선 절단 수술을 받기로 했다. 수술은 별 문제없이 잘 끝이났다. 그로부터 삼일 후 그는 병원 침대에서 아내에게 말했다.
“여보...”
“응?”
“내가.. 만약 당신의 입장이라면 어떨까 생각을 했어.”
남자의 목소리는 진실되었고 약간은 냉정한 듯한 느낌이었다. 아내는 의아한 눈으로 남자를 바라보았다.
“응?”
“근데... 나여도 싫을거 같더라고...”
남자는 말을 계속했다.
“날 놔두고 떠나고 싶으면 그렇게 해... 그래야 내 마음도 편할 것 같아.”
사랑이 많은 아내의 눈에선 눈물이 고여 흘러내렸다.
“다른 좋은 사람 만나서 재혼도 해. 우리 아직 애도 없잖아. 나도 나같은 장애인 만나서 재혼 할게.. 원하면 이혼해 줄게..”
“여보!”
아내는 남자를 안고 소리내 울었다. 그리고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안떠나..! 안떠날 거야...!!”
그녀의 진실한 마음을 그는 느낄 수 있었다. 남자는 다행으로 여기며 안도하였다. 앞으로의 미래가 막막하게 느껴졌다.
얼마 후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 그는 젊은 시절 완결시킨 자신의 습작 판타지 소설을 떠올렸다. 자신에게 재능이 있다고 생각한 그는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게으름 부리지 않고 하루하루 온전히 힘을 쏟았다. 매일 다른 작가들이 쓴 소설을 읽으며 스토리를 구상하는게 그의 일과였다.
그리고 5년의 시간이 흘렀다. 다행히도 남자가 쓴 소설은 인기가 있었고 출판을 하여 적지는 않은 수입이 생겼다. 그리고 아내는 그의 곁에 남아 희생을 했다. 남자는 우울한 죄책감도 들었으나, 그의 곁에 남아준 아내를 위해서라도 항상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지려고 노력했다.
회상을 마친 그의 입가에는 작은 웃음이 지어졌다. 그는 수현이라는 작가 지망생에게 답장을 썼다.
‘만일 그런일이 실제로 일어난다면, 서로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는 것이 필요하겠지요. 한번쯤 생각해 볼일이지만 그건 공상인거 같네요. 주어진 복에 감사하며 살아가세요. ^^’
-이 글에 내포하고 싶었던 것들(흰색 글씨로 써놨음-스포일러 주의)
이 글의 시작은 우연히 떠오른 한 가지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사랑한다면 불구가 되어도 지켜줄 수 있는가? 그것은 서로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고 가늠하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경우를 소설로 지어내 보았습니다. 일어날 확률이 희박한 일이기 때문에, 그러한 경우를 생각해 본다는게 공상이 아닐까 생각이 되어서 실제로 사고가 난 주인공 조차 작가지망생인 이수현이라는 학생에게 그것은 공상이다. 라고 말해주게끔 했습니다. 그리고 결혼이라는 서로간의 약속에 저의 생각들을 넣어보았습니다. 부족한 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